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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소식

작성일 : 25-11-1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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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용권〉 사람은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난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5
  링크 https://www.j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0000012274 [5]


김용권 사회복지법인 진산 이사장·국제학박사

‘사람은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난다.’ 이 명제는 인간을 돌보는 모든 현장의 출발점이자 마지막 귀결이다. 정신요양시설의 현장은 그 명제를 가장 깊이 실감하는 자리다. 11월 4일부터 6일까지 제주에서 열린 2025년도 정신요양시설 원장 인권교육 및 세미나는 그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시간이었다. 이번 연수의 주제는 ‘치료에서 회복으로, 그리고 삶의 회복으로’였다.

정신장애인의 회복은 단지 증상을 관리하거나 병리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다. 즉, 회복은 의료의 목표가 아니라 존엄한 삶의 회복,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는 여정이다.

세미나의 강연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신장애에서의 회복은 단지 증상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 말은 치료의 방향뿐 아니라 시설의 철학을 근본적으로 되묻는다.


그동안 우리는 ‘치료’라는 이름으로 ‘정상화’를 목표로 삼았다. 증상을 없애고, 행동을 통제하며, 규범 안으로 돌려놓는 것을 회복이라 여겼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결코 표준화될 수 없다. 정신장애의 본질은 ‘불확정성’과 ‘불특정성’에 있다. 예측할 수 없고, 정해진 경로가 없다는 것은 오히려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스티븐 호킹은 말했다. “인간의 표준은 없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하나의 기준으로 재단될 수 없는 존재다.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각자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며, 그 다양성 속에서 인간의 가치가 드러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1년 ‘정신건강과 인권에 관한 보고서’에서 “정신건강의 회복은 사람을 치료하거나 다시 정상화시키는 데 중점을 두지 않는다”고 밝혔다. 회복은 ‘정상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의 회복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인권이다.

정신요양시설은 그 ‘삶의 회복’을 실천해야 하는 공간이다. 자율적인 일정, 선택 가능한 식사, 자기결정의 존중.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회복의 출발점이다. 치료의 목표가 안정이라면, 회복의 목표는 주체적 삶이다. 그 주체성은 누군가의 허락이 아니라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닌 본래의 권리다.

세미나의 또 다른 메시지는 “회복은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였다. 정신요양시설의 돌봄은 약물의 조절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생활인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를 대상이 아닌 동행자로 만난다.


‘인권’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매일의 일상 속에서 되찾는 실천이다. 생활인이 스스로 옷을 고르고, 방을 꾸미고, 하루를 결정할 때, 그때 우리는 비로소 ‘회복’이라는 단어를 쓸 자격이 있다.

이번 연수는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는 아직도 사람을 치료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지 않은가?”, “그의 회복이 아니라, 우리의 통제를 앞세운 것은 아닌가?”

이 질문 앞에서 복지의 본질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간다. 사람은 병리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웃고, 아파하고, 사랑하는 존재다. 그의 불완전함은 결함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증거다. 그 다양성과 불확정성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형태다.

정신요양시설의 회복 패러다임은 이제 ‘치료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지속 가능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삶의 회복이란 그가 스스로 원하는 길을 걸을 수 있게 돕는 것이다. 비록 그 길이 사회가 정한 ‘정상’의 궤도와 다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정신건강과 웰빙은 증상의 유무에만 달려 있지 않다. 정신건강의 문제가 있더라도 삶을 온전히 즐기고, 관계 속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회복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결국 사람은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난다. 정신요양시설의 회복 또한 사람 속에서,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그의 삶을 함께 걸으며, 우리는 인간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신뢰를 회복한다. ‘치료에서 회복으로, 그리고 삶의 회복으로.’ 이제 복지의 언어는 바뀌어야 한다. 회복은 의료의 용어가 아니라 존엄의 언어이며, 그 존엄은 우리가 다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약속이다.

출처 : 전남일보(https://www.jnilbo.com)